고양이는 그릇에 고인 물보다 흐르는 물에 마음이 끌리는 동물이다. 반려동물 정수기라는 물건이 팔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집사들은 자동급식기까지 짝으로 들이곤 하는데, 편리한 만큼 맹점도 있다. 열세 해 밥그릇 경력의 어르신이 차분히 따져보겠다.
자동급식기가 주는 것
정해진 시간에 정량이 나온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이다.
- 눈대중이 아니라 정량이 나오니 체중 관리에 유리하다
- 하루치를 여러 번에 나눠 소량씩 줄 수 있다. 조금씩 자주 먹는 우리 위장에 맞다
- 급하게 먹고 토하는 고양이에게 한 번 양을 줄여줄 수 있다
- 집사가 늦어도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 새벽에 배고파 깨우는 일이 줄어든다. 이건 집사 쪽 이득이 크다
마지막 항목을 조금 더 말하면, 새벽에 우는 고양이 문제의 상당수는 배고픔이다. 자기 전에 주는 양을 줄이고 새벽 다섯 시에 소량이 나오도록 맞추면 해결되는 집이 많다.
집사가 야근으로 늦던 어느 저녁, 빈 그릇 앞에 앉아 하염없이 현관만 바라보던 기억이 내게는 아직 있다. 그런 저녁이 사라진다는 것만으로도 이 기계는 제 몫을 한다.
자동급식기의 맹점
- 고장 나거나 배출구가 막히면 집사가 알아채기 전까지 굶는다
- 정전이 되면 멈춘다. 건전지 예비 전원이 있는지 확인한다
- 대부분 건식 전용이다. 습식은 상해서 못 쓴다
- 여러 마리라면 누가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 없다. 한 마리가 독차지하기도 한다
- 사료가 오래 통에 머물면 산패한다. 통을 가득 채우지 말고 며칠 치만 넣는 편이 낫다
- 통 안쪽에 기름때가 낀다. 정기적으로 분해해 씻어야 한다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 대목인데, 기계가 밥을 준다고 집사 손이 놀아도 되는 게 아니다. 밥때는 우리에게 하루의 리듬이자 사람과 마주치는 시간이다. 밥은 기계가 줘도 교감 시간은 따로 챙겨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료 일부를 퍼즐 급식기에 넣어주는 방법도 함께 쓰면 좋다. 자동급식기가 편의를 담당한다면 퍼즐 급식기는 심심함을 담당한다.
정수기, 반은 물이고 반은 관리다
흐르는 물 덕에 물을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고양이가 실제로 있다. 물을 넉넉히 마시면 신장과 비뇨기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다만 조건이 붙는다.
- 필터를 제때 간다. 제품이 안내하는 주기를 지킨다
- 펌프를 분해해 닦는다. 이게 관리의 핵심이다. 펌프 안쪽에 미끈한 막이 끼면 그 물은 물그릇보다 못하다
- 물통을 매일 헹구고 물을 간다. 순환한다고 깨끗해지는 게 아니다
- 소음을 확인한다. 모터 소리를 무서워해 아예 안 가는 고양이가 있다
- 수위가 낮아지면 펌프가 헛돌며 소리가 커진다. 물이 줄었는지 매일 본다
들일 때의 요령
기존 물그릇을 치우고 정수기만 놓는 건 위험하다. 안 마시는 고양이가 생긴다.
- 기존 물그릇을 그대로 두고 정수기를 나란히 놓는다
- 며칠 지켜보고 어느 쪽을 쓰는지 본다
- 정수기를 쓰기 시작해도 물그릇 하나쯤은 남겨둔다. 정전이나 고장의 보험이다
자동급식기도 같다. 처음 며칠은 사람이 확인하면서 병행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럴 땐 기계 탓이 아니다
- 먹는 양이 갑자기 줄었다
- 물 마시는 양이 눈에 띄게 늘었다
- 사료를 씹다 흘린다
- 그릇 앞에 갔다가 그냥 돌아선다
기계를 바꾸기 전에 병원부터 가는 게 순서다. 특히 물 마시는 양이 갑자기 늘었다면 신장이나 당뇨, 갑상선 쪽을 확인할 이유가 된다.
정수기를 들인 뒤로 물을 많이 마신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병 때문이었던 경우가 있다. 정수기를 들인 시점과 겹치면 원인을 헷갈리기 쉬우니, 그 무렵의 변화는 조금 더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은 간단하다. 편리함은 누리되 청결과 점검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는 것.
열세 해를 살아보니 물 마시는 일이란 젊을 땐 시시하고 늙을수록 귀한 일이더라. 그러니 물을 더 마시게 해주는 물건이라면 나는 일단 반긴다. 관리를 거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뿐이다.
기계는 거들 뿐, 돌봄은 끝까지 집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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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nternational Cat Care, How to encourage your cat to drink
- International Cat Care, Puzzle feeders for your cat
- International Cat Care, Increased thirst and drinking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고 진단이나 처방이 아니다. 먹거나 마시는 양이 갑자기 달라졌다면 기계 탓을 하기 전에 수의사부터 찾는 것이 맞다.
망구 · 2013년 여름에 태어났다. 흰 바탕에 주황 얼룩을 얹은 치즈냥이다. 냥모상에는 고양이에 관해 알아둘 만한 것들을 적는다. 막내 레오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본문에 쓴 자료의 출처는 글 끝에 밝힌다. 건강에 관한 내용은 참고용이니, 아이가 아파 보이면 반드시 수의사와 상의하기 바란다.
문의 giant.mangg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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