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망구다. 이 나이가 되어도 틈만 나면 까끌까끌한 혀로 온몸을 매만진다. 단순히 깔끔을 떠는 게 아니라, 그루밍에는 몇 겹의 까닭이 포개져 있다.
혀가 곧 빗이다
우리 혀에는 뒤쪽으로 누운 미세한 돌기가 촘촘히 덮여 있다. 이게 빗 역할을 한다. 털을 훑으면 죽은 털과 먼지가 걸려 나오고 엉킨 결이 정돈된다.
이 구조 때문에 우리는 걸린 털을 뱉어낼 수가 없다. 돌기가 뒤로 누워 있으니 안쪽으로만 밀려 들어간다. 삼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고, 그래서 헤어볼이 생긴다.
체온을 고르고 냄새를 지운다
혀에 묻은 침이 털에서 마르면서 몸을 식힌다. 우리는 발바닥 말고는 땀을 흘리지 못하니, 여름에는 이 방식이 제법 요긴하다. 더운 날 그루밍이 늘어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냄새를 지우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사냥꾼이던 조상에게 자기 냄새는 먹잇감에게 들키는 단서였고, 동시에 더 큰 짐승에게 발견되는 단서이기도 했다. 밥을 먹고 나면 입가부터 쓱쓱 닦는 버릇이 여기서 왔다.
사회적 의미도 있다
사이 좋은 고양이끼리 서로 핥아주는 걸 알로그루밍이라 한다. 주로 머리와 목처럼 자기 혀가 닿지 않는 부위를 서로 다듬어준다. 이건 위생 이상의 뜻이 있다. 같은 무리라는 표시로 냄새를 섞는 행동이기도 하다.
사람을 핥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집사를 자기 무리로 넣었다는 뜻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도 핥는다
막내 레오는 신나게 뛰다 머쓱해지면 뜬금없이 뒷다리를 핥는다. 이런 몸단장은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행동이다. 사람도 겸연쩍을 때 괜히 뒤통수를 긁지 않더냐. 그와 비슷한 것이다.
행동학에서는 이런 걸 전위 행동이라 부른다. 갈등이나 긴장 상황에서 아무 상관 없는 행동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자체는 정상이다. 문제는 이게 일상이 될 때다.
과하면 신호를 의심하라
다음과 같은 경우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핥아 그 자리 털이 짧아지거나 벗겨진다
- 살갗이 붉어지거나 딱지가 생긴다
- 핥는 소리가 밤새 들릴 만큼 잦아졌다
- 배 안쪽이나 허벅지 안쪽처럼 잘 안 보이는 곳의 털이 없어졌다
- 사람이 다가가면 핥기를 멈추고, 혼자 있을 때만 한다
원인은 크게 셋이다. 가려움, 통증, 스트레스. 순서도 대개 그렇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부터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벼룩이나 알레르기 같은 가려움이 먼저인 경우가 훨씬 많다. 국제고양이돌봄협회도 가려운 고양이의 원인을 벼룩 외에 여러 갈래로 짚는다.
통증도 흔하다. 관절이 아픈 부위나 방광이 불편할 때 그 위쪽 배를 반복해서 핥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스트레스 탓으로 결론짓기 전에 병원에서 몸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다.
반대로 안 핥는 것도 신호다
- 등이나 엉덩이 쪽 털이 떡지고 기름지다
- 눈곱이나 입가가 지저분한 채로 있다
- 비듬이 늘었다
나이가 들어 몸이 굳으면 뒤쪽까지 혀가 닿지 않는다. 관절이 아프면 그루밍 자세 자체가 부담이 된다. 살이 많이 찐 경우에도 몸이 접히지 않아 못 핥는다. 그루밍을 안 하는 건 게을러진 게 아니라 못 하게 된 것일 때가 많다.
나도 요즘은 집사가 등 아래쪽을 대신 빗어준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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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nternational Cat Care, Itchy cat, when it is not fleas
- International Cat Care, Problem behaviour in cats
- Cornell Feline Health Center, A Hairy Dilemma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고 진단이나 처방이 아니다. 특정 부위만 과하게 핥거나 그루밍이 줄었다면 수의사에게 보이는 것이 먼저다.
망구 · 2013년 여름에 태어났다. 흰 바탕에 주황 얼룩을 얹은 치즈냥이다. 냥모상에는 고양이에 관해 알아둘 만한 것들을 적는다. 막내 레오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본문에 쓴 자료의 출처는 글 끝에 밝힌다. 건강에 관한 내용은 참고용이니, 아이가 아파 보이면 반드시 수의사와 상의하기 바란다.
문의 giant.mangg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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