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 눕는다. 집사의 발치, 이불 끝자락. 십 년 넘게 그 자리였다. 사람들은 이걸 그저 귀여운 습관쯤으로 여기지만, 우리에게 잠자리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진지한 결정이다.
잠든 고양이는 가장 무방비하다
고양이가 잠들 때만큼 스스로 위험해지는 순간은 없다. 깊이 잠든 몸은 곧 세상 앞에 배를 드러내는 일이니까. 야생에서 우리 조상은 사냥꾼이면서 동시에 더 큰 짐승에게는 먹잇감이기도 했다. 그래서 잠자리는 아무 데나 고르지 않았다. 등 뒤가 막혀 있고,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고,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빠져나갈 수 있는 자리를 골랐다.
집 안에서도 그 감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집사의 곁은 따뜻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뒤척임만으로도 곧장 알아챌 수 있어 안심이 된다. 믿을 수 있는 무리 곁에 눕는다는 건 우리에게 꽤 큰 신뢰의 표현이다.
왜 하필 발치인가
머리맡이 아니라 발치를 고르는 데엔 나름의 계산이 있다.
- 안전거리: 머리맡은 사람이 뒤척이다 팔로 누를 위험이 있다. 발밑은 적당히 가까우면서도 몸이 눌릴 걱정이 적다.
- 온도: 이불 끝자락은 사람의 체온이 은은하게 올라오되 너무 덥지 않다. 고양이가 편안하게 느끼는 온도는 사람보다 조금 높은 편이라, 이 정도가 딱 좋다.
- 출입구 방향: 발치는 대개 방문 쪽을 향한다. 누워서도 드나드는 곳을 살필 수 있다는 뜻이다.
- 냄새: 집사의 냄새가 깊이 밴 자리는 그 자체로 안심이 되는 신호다.
오래 살아 본 어르신의 현명한 선택인 셈이다. 으스대려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책임감도 조금은 섞여 있다고 해두자.
자리마다 뜻이 조금씩 다르다
발치가 아니라 다른 자리를 고르는 고양이도 많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사이라는 뜻은 아니다.
- 가슴이나 배 위: 체온과 심장 소리를 가까이서 느끼려는 쪽이다. 대체로 애착이 강하고 겁이 적은 성격에서 자주 보인다.
- 머리맡이나 베개 옆: 사람의 얼굴과 냄새에 가까이 있으려는 자리다.
- 방 안 다른 구석이나 캣타워 위: 같은 공간에 있되 자기 영역을 지키는 쪽이다. 사람을 덜 좋아해서가 아니라 잠은 혼자 자는 편이 편한 것뿐이다.
- 침대 밑이나 옷장 안: 안정을 찾을 때도 있지만, 평소와 달라졌다면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 집 막내 레오는 아직 어려서인지 밤새 자리를 서너 번 옮긴다. 그러다 새벽쯤엔 결국 내 옆으로 온다. 그 나이 땐 다들 그렇다.
잠자리가 바뀌면 몸을 의심한다
여기서부터가 집사가 진짜 알아둬야 할 대목이다. 잠자리 습관은 고양이의 컨디션을 비추는 거울이다. 다음과 같은 변화는 그냥 넘기지 않는 게 좋다.
- 늘 곁에서 자던 고양이가 갑자기 사람을 피해 숨어서만 자려 한다
- 높은 곳에서 자던 고양이가 바닥에서만 자기 시작했다. 관절 통증으로 점프를 피하는 경우가 있다
- 하루 종일 자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거나, 반대로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서성인다
- 자다가 자주 자세를 바꾸고 편한 자리를 못 찾는다
- 노령묘가 밤중에 유난히 울며 돌아다닌다
고양이는 아픈 걸 숨기는 데 능하다. 그래서 말보다 자리가 먼저 바뀐다. 이런 변화가 며칠 이어진다면 진료를 받아보는 편이 낫다.
집사가 해줄 수 있는 것
굳이 발치에서 재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대신 고를 수 있는 자리를 여러 개 만들어주면 된다. 등이 막힌 자리 하나, 높은 자리 하나, 따뜻한 자리 하나. 이렇게 성격이 다른 잠자리가 있으면 고양이는 그날의 컨디션에 맞춰 알아서 고른다. 국제고양이돌봄협회도 고양이에게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휴식 공간이 여러 개 필요하다고 안내한다.
그리고 자고 있을 때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배려다.
서운해할 일은 아니다
며칠 안 오면 삐친 거냐고 걱정하는 집사가 있다. 대개는 아니다. 여름이 오면 더 시원한 바닥을 찾고, 집 안 가구 배치가 바뀌거나 새 소리가 생기면 자리도 따라 바뀐다. 나도 장마철엔 이불 끝을 버리고 마루로 내려간다.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 그날의 온도 문제다. 다만 앞에서 말한 다른 변화가 같이 보인다면, 그때는 몸을 살펴보는 게 순서다.
여러 마리를 키우는 집에서 한 마리만 발치에 온다고 서운해할 일도 아니다. 사람과의 거리감은 고양이마다 다르다. 곁에서 자는 쪽이 더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멀찍이 자는 쪽이 덜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편한 거리가 다를 뿐이다.
같이 자도 괜찮으냐는 질문도 자주 나온다. 실내에서 지내고 구충과 예방접종을 챙기고 있다면 대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알레르기나 천식이 있는 사람, 아주 어린 아기가 있는 집이라면 침실을 나누는 편이 서로에게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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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nternational Cat Care, Making your home cat friendly
- International Cat Care, Problem behaviour in cats
- Cornell Feline Health Center, Cornell University, 고양이 행동과 노령묘 관련 자료
잠자리 변화가 며칠 이어지거나 다른 증상이 함께 보인다면 수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망구 · 2013년 여름에 태어났다. 흰 바탕에 주황 얼룩을 얹은 치즈냥이다. 냥모상에는 고양이에 관해 알아둘 만한 것들을 적는다. 막내 레오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본문에 쓴 자료의 출처는 글 끝에 밝힌다. 건강에 관한 내용은 참고용이니, 아이가 아파 보이면 반드시 수의사와 상의하기 바란다.
문의 giant.mangg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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