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의 오후는 길고 나른하다. 창으로 든 햇살이 마룻바닥에 네모나게 고이고, 나는 그 온기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집사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가 다시 뜬다. 이 느린 깜빡임 하나에 말로 다 못 할 뜻이 담겨 있다.
눈을 감는다는 건 경계를 푼다는 것
우리에게 상대를 똑바로 노려보는 일은 위협이다. 고양이끼리 마주 보고 시선을 떼지 않는 상황은 대개 싸움 직전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한 상대 앞에서는 시선을 슬쩍 비끼거나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데 마주 본 채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눈을 감는다는 건 그 순간 아무것도 못 보게 된다는 뜻이고, 포식자 앞에서는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다. 그만큼 네 곁이 안전하다는 고백인 셈이다.
이건 실제로 연구된 이야기다
느낌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영국 서식스대와 포츠머스대 연구진이 2020년 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집사가 자기 고양이에게 느린 눈 깜빡임을 보냈을 때와 아무 반응 없이 있을 때를 비교했다. 고양이 18마리를 대상으로 각자의 집에서 진행했는데, 집사가 느리게 깜빡였을 때 고양이가 눈을 가늘게 뜨는 반응이 유의하게 늘었다.
두 번째 실험이 더 흥미롭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처음 보는 사람이 느린 눈 깜빡임을 보냈다. 역시 18마리가 참여했다. 결과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양이가 마찬가지로 눈을 가늘게 뜨며 응답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뒤에 실험자가 손을 내밀었을 때 고양이가 더 잘 다가왔다는 것이다. 무표정으로 있었을 때보다 접근 점수가 높게 나왔다.
낯선 사람이 손부터 내미는 것보다, 눈인사를 먼저 건네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고양이 키스에 답하는 법
사람들은 이 몸짓을 고양이 키스라 부르더구나. 답하는 요령은 이렇다.
-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시작한다
- 정면으로 몸을 향하지 말고 몸을 살짝 옆으로 튼다
- 눈을 마주친 뒤 천천히 감았다가, 서두르지 말고 뜬다
- 눈을 뜬 뒤에도 계속 응시하지 말고 시선을 살짝 돌린다
- 답이 없어도 재촉하지 않는다. 두어 번 더 해보고 반응이 없으면 그날은 거기까지다
빠르게 여러 번 깜빡이는 건 다른 신호다. 놀랐거나 눈이 불편할 때 그렇게 된다. 느리게, 한 번에 하나씩이 요령이다.
언제 잘 통하나
- 처음 만난 고양이. 손보다 눈이 먼저인 게 낫다
- 병원이나 낯선 집처럼 긴장한 상황
- 무언가로 놀란 뒤 진정시킬 때
- 나처럼 나이 들어 몸으로 하는 인사가 줄어든 고양이에게
나도 요즘은 집사가 들어와도 예전처럼 벌떡 일어나 마중 나가지 않는다. 대신 자리에 누운 채로 눈을 한 번 느리게 감았다 뜬다. 집사는 그걸 알아본다. 우리 사이에서는 그게 마중이다.
집사들이 자꾸 묻는 것
우리 고양이는 답을 안 한다고 서운해하는 사람이 있다. 성격 차이가 크고,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답하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느린 깜빡임과 눈을 감고 조는 걸 어떻게 구분하냐는 질문도 있다. 조는 건 감은 채로 오래 있고 귀도 함께 늘어진다. 인사는 감았다가 다시 뜨고, 그 뒤에 시선을 준다.
한 가지 짚어둘 것도 있다. 계속 눈을 찡그리거나 한쪽만 감고 있다면 그건 인사가 아니다. 눈에 통증이 있을 때 나오는 자세이니, 눈물이나 충혈이 함께 있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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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umphrey, T., Proops, L., Forman, J. 외 (2020), The role of cat eye narrowing movements in cat-human communication, Scientific Reports 10, 16503
- International Cat Care, Problem behaviour in cats
- International Cat Care, Making your home cat friendly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고 진단이나 처방이 아니다. 눈을 자주 찡그리거나 한쪽만 감고 있다면 수의사에게 보이는 것이 좋다.
망구 · 2013년 여름에 태어났다. 흰 바탕에 주황 얼룩을 얹은 치즈냥이다. 냥모상에는 고양이에 관해 알아둘 만한 것들을 적는다. 막내 레오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본문에 쓴 자료의 출처는 글 끝에 밝힌다. 건강에 관한 내용은 참고용이니, 아이가 아파 보이면 반드시 수의사와 상의하기 바란다.
문의 giant.mangg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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