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집사가 택배 상자를 뜯어 물건을 꺼내는 순간, 막내 레오는 정작 물건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빈 상자부터 냉큼 차지한다. 나라고 저 마음을 모르겠는가. 다만 나이가 든 뒤로는 먼저 뛰어든 녀석에게 슬며시 자리를 양보할 뿐이다. 저 네모난 골판지 상자가 그토록 좋은 데에는 여러 까닭이 있다.
등 뒤가 막혀야 마음이 놓인다
우리 고양이는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 들어가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진다. 등 뒤를 누가 노릴까 걱정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야생의 오랜 기억이 몸에 남아, 시야가 트인 넓은 곳보다 벽에 둘러싸인 구석을 더 안전하게 여기는 것이다.
딱 맞게 감싸이는 안정감
몸이 상자 벽에 빈틈없이 닿는 그 느낌 자체가 우리에겐 ‘안전하다’는 신호로 다가온다. 헐렁한 자리보다 몸에 꼭 맞는 자리에서 더 깊이 잠드는 이유다. 나처럼 뼈마디가 예전 같지 않은 노묘에게는, 그렇게 사방이 받쳐 주는 자리가 더없이 아늑하다.
골판지의 따뜻함
골판지는 보온이 제법 잘되어 우리 체온을 잘 붙든다. 본래 고양이는 사람보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데, 상자 안은 딱 그만한 온기를 만들어 준다. 겨울이면 그 안에서 반나절을 꼼짝 않고 보내기도 한다. 여름인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몸에 감기는 그 감촉이 좋아 자꾸 들어앉게 된다.
불안할 때 숨을 요새
좁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은 낯선 상황에서 불안을 달래 주는 구실도 한다. 손님이 북적이거나 병원처럼 낯선 곳에 갔을 때, 곁에 들어가 몸을 감출 상자나 숨숨집이 하나 있으면 마음이 한결 놓인다. 레오도 천둥이 치는 밤이면 어느새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더라.
상자 하나쯤은 남겨 두길
그러니 택배 상자를 다 비웠다고 곧장 접어 버리지 말고, 하나쯤은 구석에 남겨 두면 어떻겠나. 값비싼 방석이나 캣타워가 아니어도 좋다. 우리에게는 그 흔한 골판지 상자가 세상 무엇보다 든든한 요새이니 말이다.
참고 자료
- International Cat Care (icatcare.org), 은신처와 스트레스 완화
- ASPCA, 고양이 환경 풍부화
망구 · 2013년 여름에 태어났다. 흰 바탕에 주황 얼룩을 얹은 치즈냥이다. 냥모상에는 고양이에 관해 알아둘 만한 것들을 적는다. 막내 레오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본문에 쓴 자료의 출처는 글 끝에 밝힌다. 건강에 관한 내용은 참고용이니, 아이가 아파 보이면 반드시 수의사와 상의하기 바란다.
문의 giant.mangg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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